지난달 중·고등학생들과 다대포해수욕장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미리 알려준 것은 목적지와 기차, 택시를 이용한다는 큰 틀이었습니다. 어느 음식점에 갈지, 현장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까지 정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도착한 뒤에는 주변을 살펴보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함께 음식점을 알아본 뒤 선택했습니다. 계획표에 적힌 정답을 수행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날의 상황을 보면서 팀이 다음 행동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활동을 실전사회성이라고 부릅니다.
실전사회성은 정해진 대본을 잘 수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생활환경에서 실행기능을 사용해 사람들과 함께 다음 행동을 만들어가는 능력이다.
갑자기 낯선 곳에 데려가는 수업이 아니다
이번 활동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센터의 사회성 수업을 최소 6개월 이상 경험했습니다. 실제로는 2년 넘게 함께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자폐스펙트럼 특성, ADHD 또는 사회적 상황에서의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서로의 속도와 반응을 오랫동안 보아온 관계입니다.
6개월은 단순한 기간 표시가 아닙니다. 센터에서 기본적인 의사표현, 기다리기, 감정조절, 질문하기, 도움 요청하기, 차례와 역할을 경험하고, 지도자와 또래에 대한 신뢰를 쌓는 준비 기간입니다.
따라서 현장 활동은 준비되지 않은 아이를 불확실성 속에 던지는 방식이 아닙니다.
- 장소와 이동의 큰 틀은 미리 알려준다.
- 아이가 스스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확인한다.
- 오랫동안 관계를 쌓은 또래와 팀을 구성한다.
- 세부 과제는 당일 상황에 맞추어 제시한다.
- 위험하지 않은 작은 시행착오는 아이가 경험하도록 기다린다.
장소는 예고하지만, 삶에서 일어날 일까지 예고하지는 않는다.

센터에서는 부품을 연습하고 현장에서는 하나의 행동으로 조립한다
센터 안에서는 사회성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연습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문장, 차례를 기다리는 방법,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화된 연습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한 가지 기능만 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역에서 이동할 때는 주변 신호를 찾고, 일행의 속도를 살피고, 표와 시간을 기억하고, 예상과 다른 상황이 생기면 계획을 바꾸어야 합니다.
다대포로 이동하는 하루에는 다음과 같은 실행기능이 연속해서 필요했습니다.
- 많은 정보 가운데 필요한 신호를 찾는 주의조절
- 바로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억제조절
- 목적지와 순서, 앞서 들은 내용을 유지하는 작업기억
- 상황이 바뀌었을 때 다른 방법을 찾는 인지적 유연성
- 피로와 불안을 견디면서 활동을 이어가는 정서조절
- 혼자 해결하기 어려울 때 팀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회적 판단
센터에서 배운 사회성은 현장에 나가는 순간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기능이 실제 목적을 위해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센터에서는 사회성의 부품을 연습하고, 현장에서는 그 부품들을 하나의 행동으로 조립한다.

장소는 낯설어도 함께하는 사람은 익숙하다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고, 현장 활동에 스스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이 자발성은 실전사회성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어른이 데려가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시 경험하고 싶은 관계와 활동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환경은 실행기능을 요구하지만 지나친 불안은 오히려 사고와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이때 2년 이상 함께한 또래는 서로에게 안전기지가 됩니다.
한 아이가 모든 것을 잘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길을 더 잘 찾고, 누군가는 기계 조작을 먼저 시도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서두르지 않고 친구를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실행기능을 개인의 능력으로만 보면 부족한 점만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팀에서는 서로가 가진 기능을 나누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전사회성은 혼자서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하고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함께 다음 행동을 만드는 능력이다.
왜 ‘실제 상황으로의 전이’가 중요한가
사회성 훈련 연구에서는 센터나 교실에서 배운 행동이 다른 장소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를 중요한 과제로 다룹니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청소년 대상 집단 사회성 훈련 연구들은 프로그램이 실행 가능하고 일부 적응 기능과 사회적 반응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효과가 크지 않거나 평가자와 상황에 따라 일관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수업에서 배운 기술이 실제 생활로 일반화되는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또래가 참여하거나 자연스러운 학교 환경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사회적 참여와 훈련 밖 상황으로의 일반화를 도울 가능성이 보고되었습니다. 반면 한 장소에서 보인 행동이 다른 장소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 근거들은 실전사회성 프로그램의 효과를 자동으로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장기간의 구조화된 준비, 실제 생활에서의 연습, 또래 관계와 사후 관찰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방향을 뒷받침합니다.
실행기능과 사회적 어려움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ADHD와 자폐스펙트럼 청소년의 사회적 어려움을 실행기능 하나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의 감각 특성, 불안, 언어, 과거의 관계 경험과 환경의 반응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음식점을 현장에서 고르는 일이 사회성 훈련이 되는 이유
여행 전에 음식점을 정해주면 아이들은 준비된 일정에 따라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현장에서 함께 찾고 선택하면 여러 현실적인 조건을 조정해야 합니다.
- 무엇을 먹고 싶은가?
- 일행 모두가 먹을 수 있는가?
- 이동 거리와 시간은 적절한가?
- 사람이 너무 많거나 기다림이 길지는 않은가?
- 의견이 다를 때 어떤 기준을 먼저 적용할 것인가?
음식점 선택은 검색 기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욕구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조건을 듣고, 팀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정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첫 선택이 불가능하면 새로운 후보를 찾아야 하고, 피곤하거나 배가 고픈 상태에서도 서로의 반응을 조절해야 합니다.
AI와 지도 앱이 여러 후보를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정하고, 팀원의 표정을 살피며, 누군가에게 무리가 되는 선택을 수정하는 것은 여전히 공동의 판단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혼자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목표는 모든 아이가 낯선 상황을 혼자 완벽하게 해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모든 문제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필요할 때 연락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이 도울 수 있을 때는 역할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종속적인 의존이 아니라 상호의존입니다. 서로를 강제로 친구로 묶지 않습니다. 함께할지 선택할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거절할 수 있으며, 각자의 경계를 존중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사회성이 좋은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서로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는 팀이다.
실전사회성에서 관찰하는 변화
현장 활동의 결과를 ‘문제없이 다녀왔다’로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작은 변화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 다음 활동에 스스로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는가?
- 필요한 순간에 질문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가?
- 자신의 의견과 불편함을 표현하는가?
- 다른 팀원의 속도를 기다리거나 역할을 나누는가?
- 예상이 틀어져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가?
- 갈등이나 실수 뒤에 활동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 함께한 경험을 다음 활동에서 활용하는가?
이런 관찰은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임상적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활동 전후의 목표, 아이의 자발적 행동, 도움의 정도와 회복 과정을 꾸준히 기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
다대포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은 기차를 타는 방법이나 음식점을 검색하는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피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속도를 기다리고, 함께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경험이었습니다.
AI가 더 많은 답과 경로를 제안하는 시대에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갑니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려운 사람을 기다릴지,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할지는 결국 관계 속에서 배워야 합니다.
실전사회성은 세상에 혼자 적응시키는 훈련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과정이다.
확인한 자료
- Olsson et al., Social Skills Training for Children and Adolescents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 Dean et al., Adolescents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and Social Skills Groups at School
- MacFarland & Fisher, Peer-Mediated Social Skill Generalization for Adolescents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 Generalisation of Social Communication Skills Across Home, School and an Unfamiliar Setting
- Social Functioning in Children with ADHD: Inhibition, Self-control, and Working Memory
※ 이 글은 운영자의 현장 경험과 공개 연구를 함께 정리한 교육적 기록입니다. 특정 청소년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 효과를 주장하지 않으며, 모든 참여자에게 같은 방식이 적합하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공개된 사진은 실제 참여자를 식별할 수 없도록 대체 장면으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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