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정신분석과 ‘도널도 위니콧(D. W. Winnicott)’은 인간의 초기 관계 경험이 우리 심리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위니콧은 특히 유아와 주 양육자(대부분 어머니)의 관계에 주목하여, 좋은 양육 환경이 아이의 ‘참 자기(True Self)’ 형성과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고 강조 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위니콧의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그의 주요 개념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 참 자기와 거짓자기(True Self & False Self)’ 개념을 차례로 살펴보고, 이것들이 심리치료나 미술치료에서 어떻게 응용되는지 설명하는 글이 되겠습니다.
대상관계 이론이란?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은 정신분석학의 한 분야로, 개인의 성격과 정신 세계가 초기 인간관계(주로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관점입니다. 여기서 “대상”이란 아이가 애착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람을 의미합니다(예 : 어머니나 아버지) 단순한 물건이 니죠. 아이는 태어나면서 부터 양육자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의 욕구 충족과 안정감을 모두 돌봄 제공자에게 의존합니다. 위니콧은 “아기 단독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통해, 신생아는 엄마 – 아기 한 단위로만 존재하며 서로를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고 강조했어요.
즉, 엄마와 아기의 관계가 아이의 현실 인식과 자아발달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점차 자신과 엄마가 다른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데요, 이 때 엄마와의 정서적 유대와 상호작용이 아이의 내적 세계에 깊숙히 새겨집니다. 참된 자기를 건강하게 발달시키고 대인과계의 신뢰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반면 초기 관계에서 지속적인 불안과 결핍을 경험하면, 아이는 자신의 진짜 욕구와 감정을 숨기고 방어적 성격을 발달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니콧은 아이의 발달에 좋은 양육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인 개념들로 설명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충분히 좋은 엄마, 이행 대상, 참자기와 거짓자기 입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란?
위니콧은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권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좋은 엄마란 무엇일까요? 위니콧에 따르면, 충분히 좋은 엄마란 아기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과도한 간섭 없이 아이가 스스로 경험할 여지를 주는 양육자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아이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고, 아이가 혼자 잘 놀고 있을 때는 지켜봐주며 함부로 방해하지 않는 부모가 충분히 좋은 부모라는 것이죠. 이러한 엄마는 아이에게 안정감 있는 돌봄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아이가 자기 힘으로 탐색하고 배울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위니콧은 충분히 좋은 엄마가 아이의 심리적 성장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엄마는 아이의 정서적. 신체적 욕구에 맞추어 일관되게 돌봄으로써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해 줍니다. 처음 신생아 시기에는 엄마가 아이의 요구를 거의 실시간으로 민감하게 돌봐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바로 밥을 먹이고,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하면 즉각적으로 달래주는 식으로 아기의 전능감을 인정해주죠. 이시기의 아기에게 엄마는 곧,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에, 엄마의 충분한 적응으로 아이는 기본적인 신뢰감과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러나 위니콧이 말하는 ‘충분히 좋은’이란 완벽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는 점진적으로 늦추거나 좌절을 허용하여, 아이가 혼자서도 감정을 조절하고 현실을 견디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야합니다. 예를들어, 아기가 조금 큰 후에는 모든 요구를 즉각 들어주기 보다 적당히 기다리게 하고, 혼자 놀이에 몰두했을 때는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자율성과 자기주도성을 발달하게 됩니다.
위니콧은 엄마가아이에게 주는 이러한 안정적이면서 자율성을 존중하는 환경을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엄마의 품에 안긴 것 처럼 심리적으로 보호받는 공간 속에서 아이는 마음껏 놀고 탐색할 수 있다는 뜻이죠. 놀이는 위니콧 이론에서 특히 강조되는 요소인데, 엄마가 안전한 놀이 환경을 제공할 때 아이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펼치며 자신의 참 자기를 성장 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일관성 없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욕구를 숨긴채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는 겉으로 순응적이지만 내면은 위축된 거짓자기 성향을 발달 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아이에게 충분한 애정과 예측가능한 돌봄을 주며 스스로를 표현할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충분히 좋은 엄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행 대상 (Transitional Object)의 역할
아이가 성장하면서 서서히 자신과 엄마가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때, 그 사이의 공백을 매워주는 중요한 도구가 있습니다. 위니콧은 이를 이행대상(Transitional Object) 이라고 불렀어요. 이행대상이란 아기가 엄마 품을 떠나 독립해가는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붙잡는 특별한 물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아이가 애착을 보이는 낡은 담요, 애착 인형(테디 베어), 배개 등이 대표적인 이행 대상입니다. 아기는 이러한 물건을 가지고 놀거나 끌어안으며 혼자서도 편안함을 느끼려는 노력을 하죠.
위니콧에 따르면, 이행 대상은 아이에게 현실 세계의 첫번째 “나 아닌 것” 입니다. 원래 갓난 아기는 엄마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생후 몇달이 지나면 엄마가 항상 켵에 있지 않음을 느끼며 분리 불안을 겪게 됩니다. 이때 아이는 엄마를 대신할 대상을 찾는데, 그게 바로 애착 담요나 인형 같은 물건인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아이에게 이 물건은 현실의 물건인 동시에 상상의 친구 같은 특별한 존재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너의 곰인형은 진짜야, 아니면 너가 만들어낸 거야?” 하고 묻는다면, 아이는 대답하지 못할거에요. 그만큼 이행 대상은 아이의 상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걸쳐있는 독특한 성격을 지닙니다. 아이는 이 애착 물건에 자신의 애정 어린 감정 뿐만아니라 화가 난 감정도 투사하면서, 엄마 없이도 감정을 달래고 조절하는 연습을 해 나갑니다(저희 아들의 경우에도 아내가 일을 일찍 나가는데 자신의 아끼는 자동차가 공룡인형과 싸우는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애착인형을 한밤중에 잃어버린다면 아이가 심하게 동요하는데, 이는 그 물건이 단순한 장난감 이상으로 심리적 안전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행 대상은 아이가 놀이와 상상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는 토대가 됩니다. 이행 대상을 갖고 노는 과정에서 아이는 내면의 세계와 외부 현실을 잇는 다리를 놓게 되는데요, 이는 훗날 예술적 표현이나 상징 놀이로 발달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있는 동안 이행대상이 엄마의 사랑을 상기시키는 상징물이 되어주므로, 아이는 불안을 견디고 자신만의 상상 친구와 대화하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는 것이죠. 예컨대, 혼자 남은 아이가 곰인형에게 말을 걸거나 역할 놀이를 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작용을 엇볼 수 있습니다. 위니콧은 이행대상과의 놀이가 아이에게 관계 맺기의 기초를 가르쳐 주고, 진실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이행대상은 아이가 의존적인 존재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소중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자기와 거짓자기 (True Self vs. False Self)
위니콧의 대상관계 이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개인의 자아가 얼마나 자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는가 입니다. 그는 이를 참자기(True Self)와 거짓자기(False Self)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참자기는 내가 진심으로 느끼고 원하는 나의 모습이고, 거짓자기는 남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겉으로 꾸며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자기는 개인의 진정한 본모습으로서, 자발성과 생명력을 지닌 진자 나입니다. 참자기가 건강하게 발달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으며, 그래서 삶에서 창조성과 충만함을 경험합니다. 위니콧은 참자기야말로 우리가 각자 고유한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게 하는 원천이라고 보았어요. 엄마가 아기의 미소나 울음, 몸짓에 따뜻하게 반응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면, 아기는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이 괜찮고, 나라는 존재가 영향력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존재감을 얻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사랑과 지지를 잃지 않으리란 신뢰를 형성하고, 참자기가 더욱 견고해 집니다. 다시 말해, 주변의 충분히 좋은 반응을 통해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거짓 자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가짜 자아로서, 외부의 기대에 맞춰 형성된 모습을 뜻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욕구를 억누르고 부모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거짓자기가 발달합니다. 예컨대 엄마가 우울하거나 예민해서 아기의 울음을 잘 받아주지 못하면, 아기는 울고 싶어도 참거나 조용히 있는 법을 배우조. 또는 부모의 기대가 너무가 강해서 “네 기분보다는 예의 바르게 해라” 식으로 강요받는다면, 아이는 속마음과 다르게 억지 웃음을 짓거나 착한 아이 역할을 하게 될 거에요. 맞춰주는 행동을 반복하면, 점차 겉모습은 순응적이지만 속은 공허한 거짓자기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어느 정도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예의상 미소를 짓거나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요. 위니콧은 거짓자기 개념은 이런 사회적 가면과 일맥상통합니다. 적당한 거짓자기(가면)는 사회에서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방어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속으로는 화가나도 직장에서는 참을성을 갖고 공손히 대응하는 모습은 어느정도의 거짓자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역할이기도 합니다. 위니콧도 건강한 수준의 거짓자기는 개인의 내면을 보호하고 타인과 원만히 지내게 해주는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고 보았어요. 이때의 거짓자기는 참자기에 충실하면서 겉으로 예의를 갖추는 ‘유연한 가면’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짓자기가 지나치게 강해져서 참자기를 완전히 가려버릴 때 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참된 욕구와 감정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거나 억압하면, 아이는 자기다운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고 점점 겉모습만 남은 껍데기 자아로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인은 내적 공허감을 느끼고 삶의 활력을 잃게 되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내가 진/자 누구인지 모르겠다”거나 “항상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온 것 같다”는 느낌에 우울 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성적인 우울감이나 공허함을 호소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참된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늘 착한 아이로 지내온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참자기와 거짓자기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참자기가 건강하게 자리잡은 사람은 필요에 따라 사회적 가면(거짓자기)을 쓰더라도, 스스로의 진짜 경험을 알고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자기만 키워온 사람은 남들이 보는 자기 모습과 진짜 자기 모습이 괴리되어 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위니콧 이론의 목표는,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한 관계 속에서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진짜 자신을 찾아가게 돕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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